소소한 이야기

그림자 전쟁의 종식: 이스라엘의 대이란 직접 군사 충돌의 전략적 배경 분석

dawn11 2025. 6. 16. 11:12
반응형

제1부: 협력에서 대립으로 - 역사적 단절의 궤적

오늘날 중동의 가장 첨예한 적대 관계로 인식되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은 영원불변의 숙명이 아니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라는 거대한 분수령을 기점으로, 한때 전략적 이해를 공유했던 양국의 관계가 이념적 적대 관계로 완전히 전복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의 군사적 충돌을 분석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선행 과제이다.

1.1 예상 밖의 동맹: 혁명 이전의 전략적 파트너십

1979년 이전,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친미, 친서방 노선을 견지하며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들의 협력은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가 주도하던 범아랍 민족주의의 팽창을 공동으로 견제하려는 비아랍권 국가들의 "주변부 독트린(Periphery Doctrine)"에 기반한 실용적 선택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포하자, 이란은 튀르키예에 이어 이슬람권에서 두 번째로 이스라엘을 사실상 독립 국가로 인정하며 관계의 초석을 다졌다.  

 

양국의 관계는 단순한 외교적 인정을 넘어 깊은 전략적 협력으로 발전했다. 양국 간 직항 항공편이 운항되었으며 , 가장 주목할 만한 협력 사례는 1977년부터 1979년까지 "프로젝트 플라워(Project Flower)"라는 암호명 아래 진행된 탄도미사일 공동 개발 프로젝트였다. 이와 같은 수준 높은 군사 기술 협력은 당시 양국이 공유했던 신뢰와 전략적 목표의 깊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우호 관계의 배경에는 고대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유대인을 해방시킨 역사와 구약성서 에스더서의 이야기 등, 양 민족 간의 오랜 역사적 유대감도 일부 작용했다.  

 

1.2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념적 전환점

1979년 이슬람 혁명은 양국 관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팔레비 왕조가 축출되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신정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란의 외교 정책은 180도 전환되었다.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는 이스라엘을 "이슬람의 적"이자 "위대한 사탄(미국)에 기생하는 작은 사탄"으로 규정하며 모든 공식 관계를 단절했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경을 넘어, 시오니즘에 대한 반대를 신생 정권의 핵심 정체성이자 이슬람 세계의 지도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근본적인 이념적 선언이었다. 이 혁명 자체가 양국 관계를 협력에서 적대로 전환시킨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1.3 이란-이라크 전쟁: 찰나의 실용적 밀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념적 적대 관계는 잠시 유보되기도 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특히 그 핵 개발 야망을 더 시급하고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이 과정에서 '적의 적은 친구'라는 냉엄한 국제정치의 논리가 작동했다.

이스라엘은 이라크를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이념적 숙적인 이란에 비밀리에 막대한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그 규모는 "전쟁 발발 직후 이란이 구입한 무기의 약 80%가 이스라엘에서 온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며, 전쟁 기간 동안 이란에 건네진 미사일만 1,500발에 달한다는 집계도 있다. 이 지원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무기 제공의 대가로 이란산 석유와 함께, 이라크 군사 시설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확보했다.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자로를 성공적으로 파괴한 "오페라 작전(Operation Opera)"은 바로 이란으로부터 제공받은 군사 정보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시적 협력은 양국의 전략적 사고에 있어 실용주의가 때로는 이념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이라크라는 공동의 위협이 어느 정도 통제되자, 1979년 혁명으로 촉발된 양국 간의 근본적인 이념적 적대 관계는 다시금 전면에 부상하며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그림자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제2부: '저항의 축'과 기나긴 그림자 전쟁

직접적인 전면전 대신, 이스라엘과 이란은 수십 년간 대리 세력과 비밀 공작을 동원한 비대칭적 '그림자 전쟁(Shadow War)'을 벌여왔다. 이란은 '저항의 축'이라는 대리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스라엘을 포위하고 압박하는 전략을, 이스라엘은 '전쟁 속의 전쟁(MABAM)'이라는 개념 아래 이란의 역내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최근 이 구도에 균열이 생기면서 직접 충돌의 가능성이 커졌다.

2.1 이란의 전방 방어 독트린: '저항의 축'

이란은 이스라엘 및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회피하면서도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으로 불리는 대리 세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는 분쟁을 이란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치르려는 '전방 방어(Forward Defense)' 전략의 핵심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도 호메이니 정권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에 무기를 제공하고 훈련시키며 장기적인 대리전을 준비했다. 이 네트워크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시리아와 이라크의 각종 시아파 민병대,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아우른다. '저항의 축'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동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1992년 아르헨티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폭탄 테러와 1994년 아르헨티나-이스라엘 친선협회(AMIA) 건물 폭탄 테러와 같은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났으며, 이스라엘은 두 사건 모두 헤즈볼라를 통해 이란이 배후 조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2.2 이스라엘의 '전쟁 속의 전쟁' (MABAM)

이란의 대리전 전략에 맞서 이스라엘은 '전쟁 속의 전쟁(MABAM, Campaign Between the Wars)'이라는 이름의 지속적이고 저강도인 군사 작전을 수행해왔다. 이 전략의 목표는 이란이 시리아에 군사적 거점을 구축하는 것을 막고, 헤즈볼라와 같은 대리 세력에게 정밀 유도 미사일과 같은 '게임 체인저' 무기가 이전되는 것을 차단하며, 이란의 군사적 역량을 점진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수년간 시리아 내에서 수많은 공습을 감행했다. 이 공습들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 대원, 친이란 민병대, 무기 저장고 등을 목표로 삼았다. 예를 들어, 2024년 6월에는 시리아 알레포 인근을 공습하여 친이란 민병대원 12명을 사살했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이란 인민무자헤딘(MEK)이나 준달라(Jundallah)와 같은 이란 내 반정부 세력을 비밀리에 지원하며 이란 정권을 내부로부터 흔들려는 시도도 병행했다.  

 

2.3 허물어지는 '저항의 축': 전략적 기회의 창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이란의 대리인 네트워크를 심각하게 약화시켰고, 이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계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란의 대리 세력이라는 억제력이 약화되자, 이스라엘에게 이란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가 열린 것으로 분석된다.

  •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약화: 2023년 시작된 가자지구 전쟁으로 하마스는 사실상 와해 상태에 이르렀다. 한때 15만 기에 달하는 로켓과 미사일을 보유하며 '세계 최강의 비정규군'으로 불렸던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과의 교전에서 주요 지휘관과 핵심 시설을 잃으며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 아사드 정권의 붕괴: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2024년 말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붕괴였다. 시리아는 이란이 헤즈볼라에 무기를 공급하는 핵심적인 육상 보급로였는데, 아사드 정권의 붕괴로 이 통로가 사실상 차단되면서 '저항의 축'의 척추가 부러진 셈이 되었다.  
     
  • 대리 세력의 침묵: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25년 이스라엘이 이란을 직접 공습했을 때, 한때 이란의 '1차 방어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저항의 축'은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각 세력은 이란을 위한 전면적인 보복 공격에 나서는 대신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이스라엘의 전략적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지난 1년 반 동안 이란의 대리 세력을 처리했고, 이제는 뱀의 머리를 다룰 때"라고 언급한 것은 이러한 전략적 변화를 명확히 보여준다. 수십 년간 이스라엘의 직접 공격을 억제해 온 가장 큰 요인은 헤즈볼라의 보복 위협이었다. 이 위협이 크게 감소하자, 한때 너무 위험하다고 여겨졌던 이란 핵 시설에 대한 직접 공격이 실행 가능한 군사적 옵션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결국 '전쟁 속의 전쟁'은 단순한 현상 유지를 위한 작전이 아니라, '뱀의 머리'를 직접 공격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성격을 띠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제3부: 핵 문제라는 본질 - 갈등의 핵심

이스라엘과 이란의 모든 갈등의 기저에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라는 단 하나의 핵심 변수가 자리 잡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핵무장한 이란은 정권의 이념과 결합된 실존적 위협이며, 이를 저지하는 것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국가안보의 최우선 과제이다.

3.1 실존적 위협: 이스라엘의 확고한 레드라인

이스라엘에게 핵무장한 이란은 단순한 군사적 위협을 넘어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이란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도록 두지도 않을 것"이라고 일관되게 천명해왔다.  

 

이러한 인식은 이스라엘의 절멸을 공공연히 외치는 이란의 급진적 이슬람 이념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의 결합에 대한 깊은 공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며 , 이스라엘의 최대 안보 위협으로 규정된다. 이 위협 인식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란의 팽창을 우려하는 일부 온건 아랍 국가들과도 공유되고 있다.  

 

3.2 핵무기로 가는 길: 나탄즈, 포르도, 그리고 JCPOA의 붕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2005년 강경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이스파한에서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2015년 체결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으로 잠시 제동이 걸리는 듯했으나, 2018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협정을 탈퇴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되었다.  

 

JCPOA 탈퇴 이후, 이란은 핵합의에 의해 부과되었던 제약들을 단계적으로 무력화하며 핵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기존보다 훨씬 효율적인 개량형 원심분리기를 가동하고 우라늄 농축도를 무기급에 근접한 60%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90% 농축도까지 단 몇 주면 도달할 수 있는 기술적 문턱이다. 이란 핵 프로그램의 핵심 시설은 주요 우라늄 농축이 이루어지는 나탄즈(Natanz) 시설과, 산악 지대 지하 깊숙한 곳에 건설되어 외부 공격에 대비한 포르도(Fordow) 시설이다.  

 

2025년 공격 직전, 이스라엘은 이란이 이미 400kg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했으며, 이는 핵무기 여러 개를 제조할 수 있는 양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란이 1년 안에 완전한 핵무장을 마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평가는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3.3 파괴 공작과 암살: 은밀한 저지 작전

이란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수십 년에 걸쳐 물리적인 방해 공작과 암살로 구성된 비밀 전쟁을 수행해왔다.

  • 사이버 공격: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컴퓨터 웜 '스턱스넷(Stuxnet)'이다. 약 15년 전, 스턱스넷은 나탄즈 핵시설의 원심분리기 제어 시스템에 침투하여 회전 속도를 교란함으로써 수천 개의 원심분리기를 파괴했다. 이 공격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일시적으로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이란은 수년 내에 시설을 복구하고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했다.  
     
  • 암살 작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이란의 핵심 핵 과학자들을 지속적으로 제거해왔다. 초기에는 오토바이를 이용한 총격 등이 사용되었으나, 점차 차량에 부착하는 자석 폭탄이나 원격 조종 기관총 등 정교한 방식이 동원되었다. 2025년 6월의 대규모 공습은 이러한 암살 작전의 패러다임을 바꾼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는 개별 과학자를 노리던 방식에서 벗어나, 수십 명의 핵 과학자와 군 지휘부를 그들의 자택과 지휘 본부에서 동시에 제거하는 대규모 '참수 작전'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이스라엘의 전략적 판단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음을 시사한다. 스턱스넷과 같은 파괴 공작이나 개별 과학자 암살과 같은 '지연(delay)' 전략은 이란의 핵 시계를 멈추기에 불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특히 JCPOA 붕괴 이후 이란의 핵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지연' 전략은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네타냐후 총리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지연 전략의 실패와 '저항의 축' 약화라는 전략적 기회의 창이 동시에 열리면서, 이스라엘의 대이란 정책은 은밀한 '지연'에서 공세적인 '파괴(destruction)'로 전환되었고, 이는 '일어나는 사자 작전'이라는 전례 없는 군사 행동으로 귀결되었다.  

 

제4부: 긴장 고조의 사다리 - 다마스쿠스에서 나탄즈까지

수십 년간 이어진 그림자 전쟁은 2024년 4월,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공습을 기점으로 급격히 직접적인 국가 간 충돌로 비화했다. 이 사건은 이란의 직접적인 보복을 촉발했고, 이는 다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이어지며 중동을 전면전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4.1 도화선: 다마스쿠스 영사관 공습 (2024년 4월 1일)

2024년 4월 1일, 이스라엘 공군의 F-35 스텔스 전투기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상공에서 미사일 6발을 발사했다. 목표는 주시리아 이란 대사관 옆에 위치한 영사관 건물이었다. 이 공격은 시리아 내에서 이뤄지던 기존의 공습과는 그 성격과 목표 면에서 차원이 다른 도발이었다.  

 

공습으로 건물은 완파되었고, 이란 혁명수비대(IRGC)의 정예부대인 쿠드스군의 최고위급 지휘관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를 포함해 다른 고위 장교 등 최소 16명이 사망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공습 당시 건물에서는 이란 정보 당국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IJ) 등 무장단체 지도자들 간의 가자지구 전쟁 관련 회의가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이 공격을 외교 공관에 대한 공격, 즉 자국 영토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간주하고 이를 '레드라인'을 넘은 행위로 규정하며 강력한 보복을 천명했다. 반면, 이스라엘은 공격받은 건물이 영사관이 아니라 "민간 건물로 위장한 쿠드스군의 군사 건물"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 공격이 가자지구 전쟁 장기화로 인한 국내외 비판에 직면한 네타냐후 정권이 국면 전환을 위해 계획한 계산된 도발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4.2 이란의 보복: '진실의 약속 작전' (2024년 4월 13-14일)

영사관 피격 12일 후인 4월 13일 밤, 이란은 '진실의 약속 작전(Operation True Promise)'을 개시하며 사상 처음으로 자국 영토에서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직접적인 군사 공격을 감행했다. 이란은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자폭 드론 등 300기가 넘는 발사체를 동원했다.  

 

군사적 관점에서 이 공격은 대부분 실패로 평가된다. 발사된 미사일과 드론의 99%가 이스라엘의 다층 방공망(아이언돔, 다윗의 돌팔매, 애로우)과 미국, 영국, 요르단 등 우방국의 지원에 의해 요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에게 이 공격의 목표는 군사적 파괴보다는 정치적 메시지 전달에 있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직접 타격할 의지와 능력이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훼손된 억제력을 회복하고자 했다. 공격 직후 이란은 유엔 대표부를 통해 작전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하며, 추가적인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신호를 보냈다.  

 

4.3 이스라엘의 재보복: '일어나는 사자 작전' (2025년 6월 13-15일)

이란의 보복 이후, 이스라엘은 '일어나는 사자 작전(Operation Rising Lion)'이라는 이름 아래 전례 없는 규모의 재보복 공격에 나섰다. 이는 수십 년간의 갈등이 응축된 총결산과 같은 성격의 작전이었다.

  • 작전 규모와 목표: 2025년 6월 13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이 작전에는 F-35I를 포함한 수십 대의 전투기가 동원되어 이란 전역의 150곳이 넘는 목표물을 타격했다.  
     
  • 핵 시설 타격: 작전의 최우선 목표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었다. 주요 우라늄 농축 시설인 나탄즈는 대규모 폭발과 화재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으며, 시설 내부에서 방사능 오염이 발생했다는 보고도 나왔다. 이스파한의 우라늄 변환 시설 역시 공격을 받았다. 지하 깊숙이 위치한 포르도 시설도 공격 대상에 포함되었으나, 피해 규모는 불분명하다.  
     
  • 참수 작전: 이번 작전은 이란의 군사와 과학 분야 지도부를 겨냥한 대규모 '참수 작전'을 포함했다. 이란군 참모총장,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비롯해 최소 6명에서 14명에 달하는 최고위급 핵 과학자들이 사망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택에서 드론 공격으로 암살되었는데, 이는 모사드의 정보력이 이란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 군사 및 경제 기반 시설 공격: 이스라엘은 타브리즈의 미사일 기지, 혁명수비대 시설, 레이더 기지 등 군사 목표물과 함께 테헤란의 석유 저장 시설, 세계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등 핵심 경제 기반 시설까지 공격 범위를 넓혔다.  
     
  • 첨단 전술: 이 작전은 공중급유를 통해 F-35I 전투기의 장거리 작전 능력을 극대화하고, 모사드가 사전에 이란 내부에 밀반입한 드론을 요인 암살과 방공망 파괴에 활용하는 등 고도로 정교한 전술을 선보였다.  
     

4.4 긴장 고조 타임라인 (2024년 4월 - 2025년 6월)

아래 표는 다마스쿠스 영사관 공습에서 시작되어 이스라엘의 대규모 재보복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요약한 것이다.

날짜 사건 주요 행위자 목표 및 방식 결과 및 사상자 관련 자료
2024년 4월 1일 다마스쿠스 영사관 공습 이스라엘 (공군)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 건물; F-35 전투기 미사일 6발 IRGC 쿠드스군 사령관 자헤디 등 16명 이상 사망. 건물 완파.  
 
 

2024년 4월 13-14일 진실의 약속 작전 이란 (IRGC) 이스라엘 본토; 드론 및 미사일 300기 이상 발사 대부분 요격됨. 네바팀 공군기지 경미한 피해. 이란의 억제력 회복이라는 정치적 목표 달성.  
 
 

2024년 10월 1일 2차 보복 공격 이란 (IRGC) 이스라엘 본토; 헤즈볼라 수장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미사일 180여 발 발사 대부분 요격되었으나 일부 피해 발생. 이스라엘 재보복 천명.  
 

2025년 6월 13-15일 일어나는 사자 작전 이스라엘 (공군, 모사드) 나탄즈, 포르도 등 핵시설, IRGC 지휘부, 핵 과학자 자택 등 150여 곳; F-35, 드론 등 동원 핵/군사 시설 광범위한 파괴. 군/과학계 최고 지도부 다수 사망. 이란 측 사상자 400명 이상 발생.  
 
 

2025년 6월 13-15일 이란의 즉각적 재보복 이란 (IRGC) 이스라엘 주요 도시, 군 시설, 에너지 인프라; 미사일 대규모 발사 이스라엘 방공망 일부 돌파. 텔아비브 등에서 사상자 발생 (사망 최소 13명, 부상 200명).  
 
 

제5부: 국제적 차원과 지정학적 파장

이스라엘과 이란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중동을 넘어 전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주요 국제 행위자들은 각자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분쟁은 세계 경제와 외교 지형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5.1 미국: 동맹, 조력자, 그리고 소방수

미국은 이번 사태에서 이스라엘의 안보를 철통같이 지원하면서도, 미국이 직접 개입하는 더 큰 규모의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으려는 이중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 군사적 지원: 미국은 이란의 4월 보복 공격 당시 이스라엘 방공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을 요격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안보에 대한 미국의 공약은 "철통같다"고 재확인하며 동맹 관계를 과시했다.  
     
  • 외교적 엄호와 억제: 미국은 다마스쿠스 영사관 공습에 대해서는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으며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이란의 4월 공격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재보복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5년 6월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훌륭한 공격"이었다고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이 공격이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공개적으로는 확전 자제를 촉구하면서도, 이란의 핵 능력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키는 동맹국의 군사 행동을 용인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준다.  
     
  • 직접 개입 회피: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이란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작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과 이란의 직접적인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명확한 선 긋기였다.  
     

5.2 글로벌 및 역내 강대국: 반응의 스펙트럼

다른 주요 국제 행위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 서방 동맹 (EU, 프랑스): 대체로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며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면서도, 역내 전면전을 막기 위해 모든 당사자에게 최대한의 자제를 촉구했다.  
     
  • 러시아: 이스라엘의 공습을 "용납할 수 없다"고 비난하며, 이란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국제사회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 중국: 과거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사태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긴장 완화를 촉구했다. 중동 지역의 불안정이 자국의 에너지 안보와 일대일로 구상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 아랍 국가들: 신중하고 복합적인 반응을 보였다. 요르단은 자국 영공을 통과하는 이란의 드론을 격추하며 이스라엘 방어에 간접적으로 협력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은 물밑에서 휴전을 위한 중재 외교에 나섰다. 이들은 이란의 팽창주의를 위협으로 느끼면서도,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이 자국에 미칠 파장을 극도로 경계했다.  
     
  • 국제기구 (UN, IAEA): 모든 당사자에게 자제를 촉구하고, 특히 핵시설에 대한 공격과 그로 인한 방사능 오염 가능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5.3 경제 및 전략적 결과

이번 직접 충돌은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결과를 낳았다.

  • 경제적 충격: 분쟁이 격화되자 국제 유가는 10% 급등했으며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 특히 이란의 사우스파르스 가스전과 같은 에너지 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과, 세계 원유 수송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협은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부상했다.  
     
  • 외교적 파탄: 오만과 로마 등에서 진행되던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은 즉각 중단되었다.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미국이 사실상 묵인했다고 보는 이란의 입장을 고려할 때, 단기간 내에 외교적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 전략적 패러다임 전환: 이번 사태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그림자 전쟁'의 규칙을 완전히 파괴했다. 양측 모두 상대국의 본토와 지도부를 직접 공격하는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 또한, 이스라엘의 다층 방공망은 압도적인 성능을 입증했지만, 일부 미사일이 방공망을 뚫고 텔아비브 등 도심에 떨어져 사상자를 내면서 완벽하지 않다는 한계도 드러냈다.  
     

5.4 국제 사회 입장 요약

행위자 공식 입장 주요 행동 및 발언 전략적 계산 관련 자료
미국 이스라엘 자위권 지지, 확전 자제 촉구 방공 지원, 이스라엘 공습 공개 지지, 공격 작전 불참 미군 개입 없이 이란 핵 능력 약화, 전면전 방지  
 
 
 

사우디아라비아 신중한 중립, 외교 시설 공격 비판 휴전을 위한 막후 중재 역내 불안정 및 전쟁 휘말림 방지, 이란의 팽창과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 모두 경계  
 
 

러시아 이스라엘의 공격 행위 규탄 이란에 외교적/정보적 지원 가능성 중동 내 미국 영향력 약화, 우크라이나 전쟁 시선 분산, 이란과의 동맹 강화  
 
 
 

중국 중립 및 중재자 역할 자처 모든 당사자에 긴장 완화 촉구 역내 안정 통한 에너지 안보 확보, 중동에서 외교적 영향력 확대  
 

유럽연합 (EU) 이스라엘 자위권 지지, 최대한의 자제 촉구 이란 규탄, 확전 방지 외교 노력 역내 안정 유지, 전면전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및 난민 문제 방지  
 
 
 

제6부: 결론 - 새롭고 위험한 시대의 개막

이스라엘과 이란의 최근 직접적인 군사 충돌은 양국 관계와 중동의 지정학적 지형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수십 년간 암묵적인 규칙 속에서 진행되던 '그림자 전쟁'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예측 불가능하고 훨씬 더 위험한 직접 대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6.1 그림자에서 전면으로: 규칙은 바뀌었다

본 보고서가 분석한 바와 같이, 이번 사태는 일련의 복합적인 요인들이 임계점에 도달하며 폭발한 결과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시작된 이념적 적대 관계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라는 실존적 위협을 통해 증폭되었다. 이스라엘은 '지연'을 목표로 한 비밀 공작이 실패했다고 판단했고, 동시에 이란의 '저항의 축'이라는 대리인 억제력이 와해되면서 전략적 기회의 창이 열렸다. 다마스쿠스 영사관 공습은 이 모든 배경이 응축된 도화선이었으며, 이후 이어진 보복과 재보복의 악순환은 양측 모두 상대방의 주권 영토와 지도부를 직접 타격하는 레드라인을 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양국 관계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규칙이 적용되는 국면에 진입했다.

6.2 전략적 전망: 불안정한 균형

새롭게 형성된 전략적 구도는 극도로 불안정하다. 이스라엘은 '일어나는 사자 작전'을 통해 압도적인 정보력과 장거리 타격 능력을 과시하며 이란 정권의 심장부를 타격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군사 지휘 체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반면, 이란은 비록 군사적으로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타격할 의지를 보여주며 억제력의 완전한 붕괴는 막으려 했다.

앞으로의 중동 정세는 몇 가지 핵심 질문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첫째,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이 과연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수년 이상 후퇴시키는 결정적인 타격이었는가? 아니면 오히려 이란을 자극하여 핵 프로그램을 더욱 깊숙이 숨기고 핵무기 개발에 총력을 다하도록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것인가? 둘째, 이란의 핵심 국가안보 전략이었던 대리인 네트워크 모델이 사실상 붕괴한 상황에서, 이란은 앞으로 어떤 새로운 전략을 통해 국가 안보를 도모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양측이 서로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힌 채 불안정한 소강상태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갈등의 근본 원인인 이란의 핵 야망과 이스라엘의 생존 위협 인식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충돌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될지 모를 더 파괴적인 '라운드'의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국제 사회의 외교적 노력이 실패하고 양국의 적대감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다면, 중동은 물론 전 세계가 그 파국적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보고서에서 사용된 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