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026 한중 관계

2025년은 한중 관계사의 중대한 분기점이었습니다. 11년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성사되고, 경주 APEC 정상회의를 통해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해빙 모드에 진입했습니다. 중국의 비자 면제 조치로 명동 거리는 다시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언론은 "한중 경제의 봄바람"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표면 아래 냉혹한 현실이 숨어 있습니다. 과거 상호 보완적이던 한중 경제 협력 모델은 붕괴했고, 그 자리를 치열한 경쟁과 전략적 관리 체제가 차지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2025년의 데이터를 통해 '봄바람'의 실체를 파헤치고, 2026년 이후의 전망을 살펴봅니다.
🤝 외교의 대전환: 경주 APEC과 신한중관계
시진핑 주석의 방한, 그 이면의 전략
2025년 11월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이루어진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단순한 우호적 제스처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철저히 계산된 지정학적 포석의 결과였죠. 트럼프 2.0 행정부의 대중국 견제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이 미국 주도의 한미일 3각 공조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실리 외교를 표방하며 안보와 경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양국 정상은 민감한 정치·안보 이슈보다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과 '경제 협력'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는 근본적인 안보 딜레마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필요에 의해 이를 '비정치화' 영역으로 밀어둔 것입니다.
경주 선언이 말하지 않은 것들
🔍 주목할 점
과거 APEC 선언문에 으레 포함되던 '자유롭고 개방적인 무역'이나 'WTO 중심의 다자체제' 표현이 최종 선언문에서 제외되거나 대폭 희석되었습니다. 이는 미중 갈등으로 인해 더 이상 국제 사회가 통일된 무역 규범에 합의하기 어려워졌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대신 새로운 협력 의제가 부상했습니다. 보이스피싱 대응, 저출산·고령화 공동 대응, AI 거버넌스 협력, 그리고 문화창조산업 협력 등 '소프트 이슈'들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특히 문화창조산업의 격상은 한한령 이후 막혀있던 문화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무역 구조의 지각변동: 흑자 시대의 종언
'경제의 봄바람'이라는 수사와 달리, 2025년 무역 통계는 한중 경제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30년 가까이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었던 중국은 이제 가장 관리하기 까다로운 경쟁국으로 변모했습니다.
| 구분 | 2025년 현황 | 의미 |
|---|---|---|
| 전체 무역 수지 | +780억 달러 | 8년 만의 최대 흑자 |
| 대중국 무역 | 구조적 적자 고착화 | 비반도체 부문 경쟁력 상실 |
| 수출 의존도 | 19.5% → 18.4% | 시장 다변화의 결과 |
| 주요 품목 | 반도체 편중 심화 | 전통 제조업 경쟁력 약화 |
반도체를 제외한 일반 제조업 분야에서 대중국 무역 적자가 2년 연속 지속되고 있습니다. 과거 한국이 중간재를 수출하면 중국이 이를 가공하던 수직적 분업 구조는 완전히 붕괴했습니다. 중국은 이제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일반 기계 등에서 한국산을 자국산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시장 다변화의 성과
2025년의 무역 성과는 한국 기업들의 필사적인 시장 다변화 전략이 주효했음을 증명합니다. 특히 아세안과 미국 시장의 약진이 두드러집니다.
- 아세안 시장의 부상: 대아세안 수출 비중이 17.3%로 상승하며 미국 시장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중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생산 기지이자 소비 시장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 대미 수출의 질적 변화: 반도체와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출이 여전히 견조합니다.
결국 "중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린다"는 오랜 통념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음이 증명되었습니다. 한국 경제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체질 개선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 반도체: 위태로운 최후의 보루
반도체 산업은 2025년 한국 경제를 지탱한 유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정교한 통제망과 중국의 거친 추격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AI 붐이 이끈 반도체 호황
2025년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22.2% 증가한 1,734억 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습니다. 이러한 호황의 일등 공신은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이었습니다. AI 데이터센터 증설 경쟁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기업용 SSD 수요가 폭증했고,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으로 직결되었습니다.
중국 역시 '반도체 굴기'를 외치고 있지만, AI 개발과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수적인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만큼은 한국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VEU의 족쇄: '무기한 유예'에서 '연간 허가'로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매년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치명적인 불확실성입니다. 이는 사실상 중국 내 공장의 기술 업그레이드와 생산 능력 확장을 미국의 허락 하에 두겠다는 의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사업이 '관리된 쇠퇴(Managed Decline)' 단계에 진입했다고 분석합니다. 삼성과 SK는 중국 공장에서 최첨단 공정 전환을 포기하고, 구형 공정 위주로 운영하거나 현상 유지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 배터리: 잃어버린 시장과 패권의 이동
반도체가 그나마 '위태로운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배터리 산업은 2025년 '완벽한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은 완전히 중국으로 넘어갔으며, 'K-배터리'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습니다.
충격적인 시장 점유율 붕괴
| 업체/국가 | 2024년 | 2025년 (1~11월) | 변화 |
|---|---|---|---|
| 한국 3사 합계 | 19.2% | 15.7% | ▼ 3.5%p |
| LG에너지솔루션 | - | 9.3% | +12.8% |
| SK온 | - | 4.0% | +19.3% |
| 삼성SDI | - | 2.7% | -4.6% |
| 중국 기업 합계 | - | 68.9% | 급상승 |
| CATL (중국) | - | 38.1% | 고성장 |
| BYD (중국) | - | 16.9% | +31.3% |
한국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15.7%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70%에 육박합니다. CATL 한 곳의 점유율(38.1%)이 한국 3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기술 전쟁의 패착: LFP vs NCM
이러한 격차의 근본 원인은 기술 전략의 실패에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에너지 밀도가 높은 삼원계(NCM) 배터리에 올인하는 동안, 중국 기업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안전성이 높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을 고도화했습니다.
💡 LFP의 승리
2025년, 전기차 시장이 얼리어답터 중심에서 대중 시장으로 넘어오면서 가격 경쟁력이 핵심 요소로 부상했습니다. 테슬라를 필두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보급형 모델에 LFP 배터리를 채택하면서, LFP는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뒤늦게 LFP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규모의 경제와 기술 노하우를 확보한 중국 기업들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와 CATL의 고속 충전 LFP 배터리는 가격과 성능 모두에서 한국산 NCM 배터리를 압도했습니다.
더욱 뼈아픈 것은 중국 기업들이 내수를 넘어 한국의 주력 시장이었던 유럽마저 잠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BYD의 유럽 내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대비 200% 이상 폭증했습니다. 헝가리, 독일 등에 건설된 중국의 기가팩토리들은 관세 장벽을 우회하며 현지 완성차 업체들에 저가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 관광과 문화: 진정한 해빙의 온기
제조업에서의 냉기류와 달리, 서비스 산업, 특히 관광 분야에서는 확실한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는 2025년 한중 관계 복원의 가장 가시적인 성과이자, 민간 교류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비자 면제의 나비효과
중국 정부가 한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15일 체류) 조치를 2026년 말까지 연장한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간소화를 넘어, 한국인들에게 "중국이 문을 열었다"는 강력한 심리적 시그널을 주었습니다.
V자 곡선을 그린 관광 회복
2025년 11월 기준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이는 일본, 대만 등 경쟁국 대비 높은 회복 탄력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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