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화면을 찢고 나와
당신의 삶을 '행동'으로 바꾼다
요약: 2026년 CES는 AI가 디지털 화면을 넘어 물리적 실체를 입고 우리 삶에 직접 개입하는 '구체화된 AI(Embodied AI)'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초연결 동반자'와 '노동 해방'이라는 서로 다른 비전을 통해 미래의 홈 라이프를 제시했습니다.
프롤로그: 라스베이거스의 공기가 바뀌었다
매년 1월이면 네바다주 사막 한가운데 솟아오른 라스베이거스는 전 세계 테크 트렌드의 용광로가 됩니다. 하지만 2026년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달랐습니다. 지난 2~3년간 우리가 목격한 것이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화면 속에서 텍스트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디지털 놀이'였다면, 올해 CES는 그 지능이 물리적 실체(Body)를 입고 우리 삶의 현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거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올해 CES의 슬로건은 "AI for All(모두를 위한 AI)"을 넘어 "Embodied AI(구체화된 AI)"로 진화했습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기조연설에서 "AI가 이제 물리적 세계를 점화하고 있다"고 선언했을 때, 전시장 곳곳에서는 그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증명하는 로봇과 가전들이 윙윙거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기술 거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부스는 이 거대한 흐름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삼성은 초연결 생태계와 압도적인 디스플레이 기술로 집안의 공기를 바꾸려 했고, LG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급진적인 로봇 기술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Part 1. 삼성전자: "AI는 당신의 그림자다"
(Invisible Tech & Companion)
삼성전자는 이번 CES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북적거리는 컨벤션 센터(LVCC) 메인 홀 대신, 윈 라스베이거스(Wynn Las Vegas) 호텔에 단독 전시관을 차렸습니다. 이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팔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관람객들에게 소음 없는 공간에서 AI가 스며든 일상을 체험하게 하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1. 보는 것을 넘어 느끼는 것으로: 마이크로 RGB의 혁명
삼성 전시관의 문을 열자마자 관람객들을 압도한 것은 거대한 빛의 벽, 바로 130형 마이크로 RGB(Micro RGB) TV였습니다. 핵심은 '색의 순도'와 '제어의 깊이'입니다.
기존 마이크로 LED가 초소형 LED를 광원으로 썼다면, 마이크로 RGB는 100마이크로미터(μm) 미만의 적색(R), 녹색(G), 청색(B) 소자가 스스로 빛을 낼 뿐만 아니라, 이들 각각이 독립적으로 화소로 작동합니다. 컬러 필터를 거치지 않고 순수한 빛을 눈으로 직접 쏘아 보내기 때문에, 현장에서 본 R95H 모델의 색감은 마치 물감이 묻어날 듯 생생했습니다.
하지만 하드웨어보다 놀라운 건 그 뒤에 숨은 '마이크로 RGB AI 엔진 프로'입니다. 이 프로세서는 화면 속 객체를 인식해, 축구 경기를 볼 때는 관중의 함성을 입체적으로 키워주고, 영화를 볼 때는 배우의 대사를 배경음과 분리해 명료하게 전달합니다. 삼성은 이를 '비전 AI 컴패니언(Vision AI Companion)'이라 명명했습니다.
2. 구글 제미나이(Gemini)와 만난 비스포크 냉장고
주방으로 넘어가 봅시다. 삼성은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와 손을 잡았습니다. 이 결합이 가장 빛을 발한 곳은 바로 '비스포크 AI 패밀리허브' 냉장고입니다.
과거의 스마트 냉장고는 "사과 3개 있음" 정도를 알려주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제미나이를 탑재한 2026년형 모델은 다릅니다. 냉장고 안에 있는 정체불명의 반찬통을 카메라가 비추면, AI가 라벨의 텍스트를 읽거나 내용물의 형태를 분석해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 2주 됨"이라고 인식합니다.
더 흥미로운 건 '오늘 뭐 먹지?(What's for Today?)' 기능입니다. 사용자가 "이 요리 어떻게 해?"라고 물으면 관련 유튜브 영상을 찾아주고, '비디오 투 레시피(Video to Recipe)' 기능이 영상을 분석해 조리 단계별로 오븐 온도와 시간을 자동으로 세팅해 줍니다.
3. 볼리(Ballie): 너무나 기다려온,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친구
삼성의 AI 비전을 상징하는 노란색 공 모양 로봇, '볼리(Ballie)'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죠. 올해 공개된 볼리는 프로젝터를 통해 벽에 날씨를 띄워주고, 주인을 따라다니며 집안 상황을 브리핑하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볼리는 또다시 '출시 지연'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이는 '움직이는 AI'를 상용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도전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Part 2. LG전자: "노동은 로봇에게, 삶은 당신에게"
(Zero Labor Home)
삼성전자가 '연결'과 '소프트웨어'에 집중했다면, LG전자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LVCC)에서 훨씬 더 과격하고 물리적인 미래를 그렸습니다. LG의 비전은 '제로 레이버 홈(Zero Labor Home, 노동 없는 집)'입니다.
1. 클로이(CLOiD): 가사 해방의 구세주인가, 시기상조인가?
LG 클로이는 바퀴 달린 몸통에 사람과 똑같은 관절 구조를 가진 두 팔, 그리고 다섯 손가락이 달린 휴머노이드 로봇입니다. 이번 CES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곳도 클로이의 시연장이었습니다.
클로이가 수행한 미션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세탁기에서 젖은 빨래를 꺼내 건조기로 옮기고, 건조된 옷을 꺼내 '개는(Folding)' 작업까지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로봇 공학에서 천과 같은 '비정형 물체'를 다루는 건 극도로 어려운 기술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작업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이의 등장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7개의 자유도를 가진 팔과 섬세한 5지 그리퍼(Gripper)는 로봇이 인간의 도구(컵, 문고리, 서랍)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 공감지능(Affectionate Intelligence): AI에게 마음을 가르치다
LG전자는 자사의 AI 기술에 '공감지능'이라는 독특한 브랜딩을 입혔습니다. LG의 오븐은 내부 카메라로 빵이 구워지는 색깔을 실시간 감지(AI Browning)하여 "지금이 가장 맛있을 때입니다"라고 알려줍니다. 냉장고 역시 "고기를 이번 주말에 먹을 건데 어떻게 보관해?"라고 물으면, 의도를 파악해 온도를 낮추고 숙성 모드로 변경해 줍니다.
3. 알파블(Alpha-able): 자동차, 바퀴 달린 거실이 되다
LG전자의 혁신은 집 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미래 모빌리티 콘셉트카 '알파블(Alpha-able)'은 전면 유리에 투명 OLED 기술을 적용했습니다. 또한 차량 내 센서가 운전자의 표정과 심박수를 읽어 스트레스가 높다고 판단되면 조명을 은은하게 바꾸고 마사지 기능을 켜는 '피지오 케어(Physio-care)' 기능도 선보였습니다.
Part 3. 삼성 vs LG: 두 거인의 엇갈린 시선
이번 CES 2026을 관통하며 삼성과 LG는 같은 'AI'를 외쳤지만, 그 해법은 사뭇 달랐습니다.
| 비교 포인트 | 삼성전자 (Samsung) | LG전자 (LG) |
|---|---|---|
| 핵심 키워드 | Companion (동반자) | Zero Labor (노동 제로) |
| AI 접근법 | 연결(Connection) & 소프트웨어 | 구동(Actuation) & 로보틱스 |
| 대표 로봇 | 볼리(Ballie): 귀엽고 똑똑한 정보 비서 | 클로이(CLOiD): 묵묵히 일하는 가사 도우미 |
| 디스플레이 | Micro RGB: 압도적 화질과 크기 | Wireless OLED: 선 없는 자유와 디자인 |
| 협업 생태계 | Google Gemini (개방형 협력) | 자체 LLM & Qualcomm (온디바이스 최적화) |
삼성은 AI를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로 정의했습니다. 반면 LG는 AI를 '나를 대신해 일해 주는 하인'으로 정의했습니다. 삼성은 소프트웨어 파워를, LG는 기구학적 엔지니어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Part 4. 우리가 마주할 미래: 편의인가, 감시인가?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동반합니다. CES 2026에서 본 미래는 분명 편리하고 매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 프라이버시: 내 피부 상태를 분석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로봇들이 수집한 데이터는 과연 안전할까요?
- 인간의 역할: 요리법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빨래를 갤 필요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에필로그: 2026년, AI가 문지방을 넘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오며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제 되돌릴 수 없다."
삼성과 LG가 보여준 2026년의 청사진은 AI가 우리 집 문지방을 넘어, 거실 소파 옆에, 주방 싱크대 앞에 서 있게 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기술은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이 똑똑하고 부지런한 기계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결정하는 우리의 몫입니다.
'IT' 카테고리의 다른 글
| CES 2026 총정리: 스마트폰과 가전, '도구'에서 '생각하는 동반자'로 진화하다 (1) | 2026.01.08 |
|---|---|
| 라스베이거스 사막에 뜬 거북선? CES 2026을 홀린 K-전력의 정체 (1) | 2026.01.07 |
| 애플의 2026년은 미쳤다! 접는 아이폰부터 로봇 팔까지 총정리 🍎 (1) | 2026.01.04 |
| 모빌리티 4.0: 바퀴 달린 컴퓨터가 바꾸는 인류의 삶 (1) | 2026.01.03 |
| 스크린을 찢고 나온 AI: 2026년, 휴머노이드의 습격이 시작됐다 (1) | 2026.01.03 |